“ 나? 그냥 이렌. ”

 
주소:  호세 올리비에라 애비뉴 14, 1700-301 리스보아, 포르투갈, 3층 모퉁이방의 ‘이렌’
이름:  이레네이 마리아 데 레이스 페레이라 | Irenei Maria de Reis Ferreira
나이:  14세
생일:  11월 10일
 

 

"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마법 "

   
   

 


 

외관

166cm, 50kg. 백발. 연녹색과 하늘색 어딘가쯤의 눈색.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아이의 스테레오타입처럼 생겼다. 이목구비와 눈썹이 짙고 피부는 가무잡잡하다. 피어싱만 벌써 열개에 육박해간다. 눈썹에 했던 건 덧났지만.

지난 생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팔다리만 불쑥 자랐다. 몸의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해 여드름 하나 없는 낯이 몹시 앳되다. 이미 가지고 있던 어떤 옷을 입어도 멋이 없고 상당히 불균형해 보여서 늘 찢어진 청바지에 라운드티 신세다. 며칠 전 머리를 자른 이래 ‘이 녀석 사실 펑크였어?!’라는 오해가 추가되었다. 다소 억울하다. 머리에 대해-어머니는 ‘쥐가 뜯어먹은 것 같다’며 질색하고 아버지는 ‘노 코멘트’, 무관심했고, 형제자매들은 낄낄댔고, 친구들은 ‘좀 더 기르면 예뻐질 거다’라고 위로했다. 본인은 애써 ‘샤워가 간편해졌다’며 시크한 척 한다. 단정한 장발을 저 혼자 잘라본다고 난리 친 자업자득이다. 곱슬기가 강해 머리가 마구마구 들뜨는데 손질이 어려워 얼른 자라라고 기도 중.

 

 

성격

활달한 | 자유로운 척 | 비밀스러운 척

 

 

기타

1/ 간략한 자기소개

포르투갈 리스본 비마법사 가정 출신. 부친은 렌트카 딜러, 모친은 청과상 주인. 오남 삼녀의 여섯째.

친부모의 성을 하나씩 받아왔다. 주변엔 이레네이 페레이라 또는 이렌Irene으로 통한다.

호칭은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직은’ 그녀she로 족하다.

승강장에 트렁크 세 개와 부엉이 한 마리, 트럼펫 하나를 끌고, 입에는 맛없는 샌드위치를 물고 어기적어기적 도착했다.

아마추어 트럼펫 연주자. 아마추어 재즈 비평가(리코가 지어준 직책). 8학년을 마친 학생이자 마리나 레코드 직원. 친구들의 SNS 출연 경력 다수, 본인도 SNS 매일 함. 공원에서 비둘기들에게 자주 불어줌. 그 외 정식 실전 연주 경험 전무.

리코라는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서 어휘가 가끔 할아버지가 쓰는 그것이 된다.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실존적 고뇌에 빠지기 딱 좋은 나이 열세살이다.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매일매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어쩐지 조금 외롭다.

설마 사춘기인가? 그건 멋지지 않아!

 

2/ 가족

비마법사 가정에서 자란 완벽히 평범한 21세기의 십대-라고 스스로를 프레이밍함으로써 자신의 평범함에 대한 방패 삼고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오남 삼녀 중 여섯째로서 페레이라 가족의 이도저도 아닌 녀석을 담당한다. 모름지기 대가족의 여섯째란 문제 일으키지 않고 알아서 점심 도시락을 싸고, 열여덟 되기도 전에 용돈벌이 아르바이트를 두세개씩 뛰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물여섯살 첫째와 턱받이에 침 흘리는 세살 막내가 아침 식탁에 공존하는 풍경을 일상적으로 보고 자라면 약간의 억척스러움과 무소유를 원치 않았던 덤처럼 얻고 만다.

친부모가 특별히 서로를 깊이 사랑했거나 자녀계획에 웅대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레네이 기준으로 아버지가 두번, 어머니가 한번씩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애들은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맡겨지고 떠밀려졌다. 그렇게 ‘지금 가족’이 된 지 4년째. 막내의 출생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가족 대이동’이 벌어질 기미가 없어 이대로 성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락말락. 형제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실제로 피가 섞인 형제는 딱 하나고 나머지는 바뀐 부모들이 어딘가에서 낳아왔거나 데려왔거나, 하여간 복잡하다. 이레네이는 동년배의 일란성 쌍둥이와 가장 친하다. 녀석들끼리 붙어다니며 이레네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이레네이와 말썽을 피우기도 하는 것이 일상이다.

 

3/ 가족 외 인간관계-친구

우선 사회학자와 아동발달학자가 입을 모아 중요하다 말하는 또래 친구들을 살피면, 날마다 어울리는 무리가 있고 24/7 연락하는 절친이 있다. 학교의 세력구도는 가장 핫한 그룹을 둘러싼 변두리 그룹들이, 마치 태양계 행성의 위성들처럼 나열되어 있으며 이레네이는 위성 중에서도 안쪽에 가까운 위치다. 어쩌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는 글쎄.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밖에는. 심지어 이레네이는 종종 무리를 이탈했다 돌아오는 행동을 용인받고 있다. ‘냅둬, 쟤는 원래 저래’라는 친구들의 넌더리 난 말들이 따라붙어 설명하지 않는 이레네이를 대신 설명해주었다. 이레네이의 비밀스러운 척-자유로운 척이 아직까지는 쿨한 성격으로 여겨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기숙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깜짝 뉴스를 전해도 반응들이 심드렁했다. ‘자기네들 몰래 입학 원서 냈나 보네’하고. 마음에 약간 상처를 입었지만 방학에 돌아왔을 때 모른 척 할 것 같진 않아 상처난 만큼의 위안을 얻었다.

 

4/ 가족 외 인간관계-리코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은, ‘리코 할배’다. 하굣길에 이레네이가 마리아 산토스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집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틀면 리코네 레코드 가게를 가는 길이다. 일주일에 세번은 꼭 들러 가게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 지 거의 7년이 되어간다. 어렸던 이레네이가 길을 잃었을 때 리코가 아이를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둘째 오빠가 찾으러 올 때까지 레코드판 앞에 앉혀둔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그날부터 이레네이는 퉁명스럽기로 유명한 영감의 가게를 빵 먹듯 드나들었다.

리코는 성가신 아이를 모른 척 하다가, 먼지떨이로 쫓아 보다가, 레코드 기계를 안겨주며 제발 가라고 애걸도 해 봤다가, 그 모든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이레네이가 꿋꿋이 찾아오자 결국 파트타임 직원으로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업무는 먼지 털기, 리코의 기분에 맞는 레코드 틀기, 잡담하기, 길고양이 밥주기, 접객하기, 앨범 평론하기. 하는 게 없어 보여도 은근히 많아서 하루가 순식간에 저문다. 이레네이가 오기 전까지 다소 방치되고 있던 가게가 아이의 수완 아래 전구도 갈고 디스플레이도 바꾸고 해서 내부가 제법 번듯해졌다. 외관은 여전히 허름하지만. 아이의 보호자들은, 아이를 돌보는 노동이 준다면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하던 시기였던지라 리코가 이상한 짓을 하거나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그냥 이레네이를 놓아두었다. 이레네이는 부모의 방임과 리코의 묵인 아래 가게를 드나들었다.

주변 가게들이 간판을 바꿔 달거나 망하거나 신식으로 바뀌어 가는 중에도 레코드 가게만은 파리를 날리며 현상태를 유지했다. 호객용으로 싸구려 자석이나 뱃지, 아이 러브 리스본 티셔츠를 걸어놓을 만도 한데 그냥 레코드뿐. 리스본 하늘에 자동차가 날아다니게 되어도 이 가게만은,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리코를 찾는 동네 주민이 하루 손님의 전부인 날이 레코드 한장 팔리는 날보다 많았다.

드물게 더위에 지친 관광객이 가끔 안을 들여다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 이레네이는 그들에게 사진값을 받아야 한다는 논지를 정확하게 전달했으나 리코는 그러지 말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레코드 값은 1유로 깎아주는 일이 없었다. 가끔 무엇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무 값도 받지 않고 아끼던 앨범을 넘겨주기도 했는데 기준이 무엇인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고집불퉁 영감이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리코가 프랑스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쫓겨난 거부라는 설이었다. 낯선 방문자와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던 리코를 목격한 사람이 퍼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레네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리코는 프랑스어 외에도 서유럽의 여러 언어를 능통하게 말할 줄 알았고 딱히 범죄자처럼 나쁜 짓을 숨기는 기색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줄리어드나 베르디 음악원 졸업한 고학력 음악 전공자, 그런데 인생에 상처가 있는, 노인네, 처럼 보였다.

 

5/ 4번에 이어-음악적 소양?

리코네 가게는 전면과 후면이 분리되어 존재했다. 전면은 골목으로 입구가 난 가게였고 후면은 가게에 난 쪽문을 통해 나가면 펼쳐지는 연습실이었다. 각종 상자에 가려 감춰져 있던 문이 이레네이의 극성맞은 청소로 드러나게 되자마자 이레네이는 리코를 하루 내내 졸라댔고 연습실의 열쇠를 얻어냈다. 방치되어 있던 연습실의 먼지를 떨어내니 제법... 그럴듯해졌다.

하필 트럼펫을 집은 이유는 그냥 악기가 크고 멋있고 빛 아래 가장 반짝이고 ‘트럼펫 불 줄 알아’라고 말하면 독특해 보일 것 같아서. 그리고 리코가 ‘니 폐활량에 트럼펫을 안 하는 게 손해’, ‘그거 하면 가르쳐준다’고 말해서. 리코는 자기만의 기준을 가진 깐깐하고 훌륭한 스승이었다. 이레네이가 정통 주법을 심도 있게 배우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레네이는 재즈로 떠나가버렸다. 악기는 매월 봉급에서 얼마씩 깎아가며 대여하기로 협상했는데, 언젠가부터 리코가 악기 값 정산을 잊어버려 거의 무료 영구 임대가 되었다. 웹에 모델을 쳐봤다 ‘초심자용’이란 설명을 발견하고 약간 실망했다.

학교에 악기 가방을 들고 갔을 때 받는 은근한 선망과 ‘음악 하는 애’라는 수식어가 주는 우쭐거림도 빛이 바래고 있다. 이걸로 먹고 살기 위해선 단순히 잘 부는 게 아니라 천재적인 실력, 아니면 천재적인 자기 PR로 바이럴을 타거나, 부모가 재력가이거나 셋중 하나여야 하는 (쓸데없이 비관적이다) 2023년이다. 자신이 천재인지 자문했다 혼자 민망해지길 수 번.

최근 연습에 소홀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 리코는 당연히 연일 못마땅한 기색이다. 그러나 집 굴뚝 위 마리아상에 대고 맹세컨대 이레네이는 또래의 백배 천배로 성실하게 연습에 임해왔다. 지금은 잠깐 쉬어가는 것뿐이다. 정말로.

 

6/ 마법과 마법사

열살에 마법적 소양이 처음 발현했는데, 바로바로…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옮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레네이는 자기가 남들보다 힘이 특별히 센 줄 알았다. 그 뒤로도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지만 모두 사소했으며 원하는 타이밍에(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발현해주지 않았기에 그냥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싫어하는 녀석의 사과주스가 식초로 변한다던가 풀린 줄 알았던 운동화끈이 묶여있거나 등등. 호그와트 입학 안내를 받은 지금도 그 사건들이 마법이었는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으니 이레네이가 얼마나 마법 문외한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SNS에 피클처럼 절여진 십대이니만큼 *이능력* 음모론을 자주 접했다. 조잡한 합성 같은 영상을 휙휙 넘겨보다 개중 정교한 것에는 좋아요를 누르고 얼마 안 가 잊어버렸다. 주위에서도 누가 그랬다더라는 루머가 건기우기 철따라 유행했다. 옆학교 옥상에서 누가 떨어졌는데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등교했다는 이야기가 돌면 수위들이 교문과 옥상 문단속을 조금 더 철저히 하는, 그 정도 영향력일 뿐이었다.

 

7/ 그래서 지금 기숙학교로 들어가라고요?

처음엔 말로만 듣던 일루미나티, 로젠크로이츠 뭐 그렇고 그런 비밀스럽고 뒤 구린 집단에서 발행한 스팸인 줄 알았다. 며칠을 서랍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두었다. 그러나 예의 쌍둥이 녀석들이 뱃지를 탐내길래, 훔치기 전에 먼저 겉옷에 해보았다가… 우연찮게 아랍어 방송을 지나치고 만 것이다! 남들도 자기도 생판 모르는 언어를 완벽히 ‘이해’해버리고 이것이 진짜라는 수긍 단계에 다다랐다.

다만 고향을 두고 낯선 섬나라에 가기로 마음을 매듭짓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다. 익숙한 것. 사랑하는 것. 나를 구성하는 것. 이것들을 뒤로 하고 낯선 것, 처음 보는 것, 타인의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배우던 트럼펫은, 하루하루 주름이 늘어가는 리코는.

이 얘기들을 에둘러 말하자 영감탱이 말했다: ‘정말 가고 싶어하는구먼. 가라 가. 니가 목만 길어서 기린이 되어 와도 받아주마.’

저녁시간에 가족에게 전학 계획을 발표하자 술렁임이 약간 일었지만 이내 형제들의 ‘그럼 쟤 방은 내가 쓸래’ 류의 다툼으로 무마되었다. 페레이라 가의 입이 한시적으로 하나 줄어도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아쉬워해주길 바랐는데. 딱 몇년만 기다려 보라지. 화려한 마법을 배워서 놀라게 해줄 테니까. (이는 이레네이가 마법 사회의 규정을 모르기에 가질 수 있었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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