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를 즐거워 함 "


 

“ 야, 그거 내 거야. ”

 

 
주소:  스타방에르, 포르세티 보육원, 
2층 동쪽 끝방 왼쪽에서 세번째 침대, 카일로.

이름:  카일로 이븐 | Kylo Even
나이:  13세
생일:  3월 29일
 

 

" Eldir "


 

외관

온통 희게 깔린 도시의 담장을 새빨간 머리카락이 가로지른다. 진저라기에는 밝고 진홍이라기에는 여린 색은 어느 쪽이건 이, 겨울이 긴 땅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인의 걸음새라기에는 흰 돌길 위를 달음박질하면서도 헛디디는 법이 없고, 좁다랗게 얽힌 골목 사이 갈림길을 맞닥뜨리고도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다. 또래보다 자그마한 체구는 지극히 날랜 몸짓을 허락했다. 낡은 운동화가 지면을 박차는 힘에 떠밀린 자갈이 서로 맞물려 달각이는 소리가 겨우 자취로 남았다.

교활하도록 날랜 것이 비단 걸음 뿐이려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동향을 살필 것도 없이, 소리소문없이 매대의 사과 한 알을 낚아채는 손끝이 야무지다. 사과 한 알은 때로는 체리 한 줌이, 딸기 서너알이 되었다. 낯선 사람과 익숙한 사람이 뒤섞여 언제나 북적이는 스타방에르에서, 상점 몇의 재고가 맞지 않게 된 품목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 카일로는 값을 치르지 않는다. 

사방이 하얀 북극으로 가는 길ㅡ노르웨이에서 여름의 녹음을 옮겨심은 눈동자까지, 눈에 띄는 색이란 색은 모조리 지니고 있으면서 한 번 덜미 잡힌 적 없는 놀라운 솜씨의 꼬마-상습-절도범도 보육원 담장을 코앞에 두면 걸음을 무겁게 끌었다. 브리나 원장 선생님은 보육시설의 숱한 다정한 양육자 가운데서도 보기 드물게 사려 깊은 교육자였으므로 학대 따위는 아닌 말이다. 새삼 없는 죄악감 따위가 찔려서도 아니다. 다만 그 붉은 머리카락이 개구멍의 수풀 사이로 도드라지자마자 모여든 ‘동생’ 여럿이 카일로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제아무리 세심하게 보살핀다 한들 보육원의 아이란 눈치 보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사라진 카일로가 돌아올 때는 언제나 좋은 것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지 오래였다. 반 걸음 떼기도 어렵게 매달려서는 간절하게 올려다보는 동생들의 얼굴 앞에서, 카일로는 매번 주머니를 털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보육원의 아이란 양보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었다. 

보육원 담장 밖에선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그의 몫인 양 같다가도,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우리’라는 이름표가 붙기 일쑤였다. 그리고 실은 담장 밖의 어느 것도 카일로의 것은 아니다. 알고 있었다.

만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그조차 해보지 못한 것. 이 모든 가운데 어느 것도, 온전하고 오롯하게 그의 것은.

 

 

성격

반듯할 이유가 없어 삐딱한 | 유연하고도 유쾌한 악동 | 습관성 맏이 | 내재된 독점욕

 

 

기타

포르세티 보육원은 마흔 남짓한 아이들이 ‘뒤엉켜’ 산다. 오래된 저택을 개조한 덕분에 공간 만큼은 넉넉하였으므로 이 지나치게 밀접한 표현의 기준은 적어도 물리적인 거리는 아니었다. 열여덟 살이 되면 퇴소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스타방에르는 일자리가 많았고 대다수가 열여섯 쯤에 진로를 결정해 개인 공부방에 틀어박히거나 짐가방을 들고 정문을 나섰다. 요컨대 카일로는 포르세티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시, 해가 뜨자마자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세수하고 양치하고 식탁에 앉히고 그릇을 반은 비우는지 감시하다가 옷을 갈아입히는 난리법석 속에서, 카일로는 어리광 섞은 목소리로 형이라 부르는 쪽이 아니라 불리는 쪽이었다는 뜻이다. 

동쪽 끝방, 나란한 침대 여섯 중 카일로의 침대는 가장 왼쪽에서 점차 가운데로 옮겨갔다. 자다가 굴러 떨어질 나이가 지났다는 이유에서 였고, 밤중에 동생들이 잠투정을 부리면 달래주러 가기 좋다는 이유에서 였다. 왼쪽에서 세 번째 침대는 머리맡에 창이 나 이따금 창틀에 바람이 부딪혀 덜컹이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창틀 아래 놓인 작은 2단 서랍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특권이 있었다. 포르세티 보육원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정확하게는 독차지가 아니었지만. 서랍 윗단에는 동생들의 자질구레한 물건이 들어갔고, (“카일로, 어제 만든 도토리 목걸이 여기에 보관해도 돼?”) 아랫단에도 잠금 장치가 없어 어린 동생들이 불쑥 열어 (“뭘 먹었길래 혓바닥이 온통 까만거야, 너?“/“서랍에 있던 감초 사탕!”) 헤집어 놓곤 했다. 그래서 카일로는 서랍에 자기 물건을 보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물건이랄 것도 없었으니.

그러나 그 날, 드물게도 차갑지 않은 바람이 손가락에 감겨오던 날 만큼은 달랐다. 달이 환한 밤이었고, 그래서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일곱 살 오브를 데리고 오자마자 여섯 살 루카스가 잠에서 깨 칭얼거린 참이었다. 가장 오른쪽 침대 걸터앉아 백금색 고수머리 꼬마를 달래던 카일로의 귀에 거센 덜컹임이 들려왔다. 달이 희게 비친 서랍 위에 못 보던 편지가 있었다. 포르세티 보육원에서 물건이란 본래 제자리에 있거나 없거나, 때로는 아예 제자리라는 게 없는 일까지도 허다한 것이었므로 카일로는 저녁 식사 전에는 기억에 없던 편지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놀라지 않았다. 숱 많은 눈썹이 비뚜름하게 치켜올라간 것은 편지 중간의 마술ㅡ포르세티 보육원은 명백한 비마법사 기관이었으므로, 그곳의 원아인 카일로에게도 Magi란 마법보다는 마술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ㅡ이라는 단어와 편지 말미에 적힌 카일로라는 이름에서였다. 

요즘 전단지는 사람 이름도 붙여서 인쇄하네. 대단한 정성 납셨군. 아니면 이것도 보이스피싱인가? 

마술사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신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 그들의 놀라운 ‘마법’을 전 세계에 동시 송출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마케팅 방식을 채용했다. 20세기도 아니고, 유랑 마술 극단 따위가 돌아다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추신으로 덧붙여진 방문예고를 카일로는 진부한 광고 멘트로 읽었다. 

그럼에도 그 한 장의 편지가 카일로의 서랍 아랫단,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된 건 주소지에 적힌 이름이 ‘카일로’였기 때문이다. 포르세티 보육원의 모두가 공유하는 성이 붙은 ‘카일로 이븐’이 아니라. 

마법 같은 일들은 한나절 후, 정확히 편지에 적혀있던 시각에 일어났다. 단정한 정장, 그러나 뜬금없는 검은 망토를 두른 낯선 이는 돌연 나타났다. 그리고 돌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법의 존재, 영국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마법 학교, 입학하고자 한다면 주어질 지원들. 카일로는 그것이 그간 일어났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해답이자 그가 오롯하게 거머쥔 어떤 것에 대한 증거라는 깨달음에 온 신경이 쏠려, 그 이야기의 반절을 흘려들었다. “이건 제 건가요?” 카일로가 물었다. “물론이지.” ‘마법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손바닥만한 남색 표지의 메모장이나 감초 사탕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바랐던 것들은 만질 수 없되 이름 붙여야만 하는 영역에 존재했다. 눈을 뜨면서부터 외워야 했던 선생님이라는 호칭, 불시에 떠안겨진 남매들, 당연한 듯 나누어 가지는 공동체의 책임, 언제나 공평히 나누어 주어졌던 조각난 애정과는 다른 것. 그가 선택해야만 쌓아올려지는 것들, 그가 명명해야만 정립되는 관계들, 독차지하고 고집부려도 다만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책임이 될 뿐인. 그리하여 비로소 그의 것이 될. 그는 오롯하고 완벽한 것을 원했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마법이 바로 그랬다. 

그래서 카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을 거쳐, 여기에 있다. 보육원을 나서며 챙겨온 짐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적힌 입학 안내 편지 한 장. 포르세티에서 온전히 그의 것이라 할 만한 건 그 하나가 전부였으므로. 그에 교과서와 수업 물품, 새로 산 옷 두어 벌, 시켈과 크넛 약간이 든 주머니ㅡ그를 안내한 마법사의 선물이었다. 정확하게는 마법사는 현물을 제안했으나 카일로가 금전으로 요구한ㅡ를 더하자 작은 캐리어 하나가 겨우 찼다. 

고약한 손버릇은 그대로다. 타인의 소유권 쯤은 손쉽게 무시한다. ‘한 번 쓰고 돌려줄 건데 뭐 어때?’ 쯤의, 저 혼자만 태평한 태도를 고수한다. 교내에서 그가 ‘슬쩍’할 만한 물건이라고 해봐야 학용품이 고작일 테고, 그런 류의 물건은 제 것이라도 소유 개념이 희박하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제 것’이라 인식한 물건은 남이 손을 대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호기심이 앞선다면 학용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훔칠 수 있으니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하는 셈. ‘그렇게 소중한 거였으면 잘 간수하지 그랬어?’ 라는 태도는 여전하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뻔뻔스러운 작태다. 

몸놀림이 날렵하면서도 힘이 있다. 성장기를 거치지 않은 가벼운 몸의 수혜보다는 재능의 단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호칭은 나이에 상관없이 ‘너’, 그리고 이름으로 통일한다.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자란 까닭에 나이차에 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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